한국에만 있다는 '전세'…왜 적폐가 되었나? [더 머니이스트-심형석의 부동산정석]

입력 2023-05-22 08:00   수정 2023-05-22 11:03

전세는 세계에서 보기드문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주택임대차 계약 중 한 형태입니다. 전세권자(임차인)가 전세금을 주택 소유자(임대인)에게 예탁하는 조건으로 주택을 임차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전세금을 100% 돌려받고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부동산 임대료(월세)를 별도로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의 임대차 형태인 월세와 구분됩니다.

전세버스나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에게 “당신이 이 장소 전세 냈느냐?”라는 식으로 따질 때 ‘전세’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전세는 상당기간 우리와 함께 해온 임대차 관행입니다. 강화도 조약 당시로 전세제도의 기원을 찾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전세제도가 확산된 것은 1970년대 이후라고 봅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대도시의 주택수요가 급증하면서 취약한 제도권 금융 구조로 인해 사적 임대차 형태인 전세가 제도로 정착됐다고 합니다.

전세제도로 인해 탄생한 전세금은 자산이며 부채로의 성향을 가집니다. 주택시장 상승기에는 자산으로의 성향이 두드러집니다. 갭투자가 바로 그 사례입니다. 주택시장 상승기에는 전세를 인수하고 주택을 매매하는 방식이 성행합니다. 반면 주택시장 하락기에는 부채로의 경향이 강해집니다. 전세보증금 미 반환(전세사기) 등의 문제는 전세가 가지는 부채로의 경향이 가장 강하게 반영된 결과입니다.

보증금 미 반환의 문제가 지금 발생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집값과 전세 값이 동반 급락했습니다. 1998년 전국 주택 전세가격은 무려 18.4%나 하락해 통계집계이래 최대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역전세난이 발생해 집주인이 보증금을 추가로 마련해 이사 나가는 세입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역사가 반복되듯 지금의 역전세난 또한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행으로 정착된 전세는 우리나라의 주택금융이 미비했던 시절 고금리를 바탕으로 안착된 제도입니다. 당시 은행 대출금리가 20% 정도였으니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저축하거나 투자하고 세입자는 집에 거주하는 방식이 정착된 겁니다. 하지만 예금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하는 것이 더 이상 매력적인 투자수단이 되지 않다 보니 임대인의 전세금 손실 가능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이것이 임대인발 전세대출 리스크, 깡통전세의 원인이 됐습니다.

문제는 문재인정부에서 도입된 임대차3법입니다. 임대차3법이 도입되기 전 전세시장은 매매시장과는 다르게 지극히 안정적이었습니다. 임대차3법이 도입되자마자 전세가격은 폭등했으며 전세난민으로 내몰린 임차인들은 위험한 전세도 마다하지 않게 된 겁니다. 전세가격이 폭등하면서 세입자를 위해 만든 제도가 세입자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겁니다. 현재의 역전세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큰 문제는 집주인들이 보유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상상을 초월한 종합부동산세를 포함한 재산세 부담은 4년의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리면서 세금부담을 보전하려는 임대인들의 시도가 증가했습니다. 전월세시장의 혼란은 모두 졸속입법이 몰고온 후유증에 다름 아닙니다. 야당의원들조차 상임위 상정 법안의 내용을 표결 직전에 받아볼 정도였다는 후문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최근 국토교통부장관은 간담회에서 임대차3법을 아주 복잡한 문제를 회초리 하나 들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와 함께 3법의 도입 순서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전월세신고제 이후 계약갱신 청구권제와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했다면 주택임대차시장의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을 듯싶습니다.

전세제도는 시간을 가지고 개선돼야 하겠지만 의도적으로 없애는 것은 주택임대차시장의 혼란만을 자극할 따름입니다. 전세제도가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강압적인 주택임대차시장 개입에 따른 폐단을 없애는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국민의 힘의 공약집을 다시 펼쳐볼 필요도 없이 임대인은 악의 축이 아니며 안정적인 임대주택의 공급자입니다.

만약 전세가 없어진다면 주택금융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내 집 마련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전세에서 매매로 넘어가는 비중은 50%가 넘지만 월세의 경우 내 집 마련 비중은 10% 이하로 떨어집니다. 전세는 내 집 마련의 기반입니다. 월세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매매와 월세 임대차 계약만 있으면 전세라는 완충 계약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부담하는 선진국형 주택임대차시장이 자리잡을 겁니다.

전세보증금 미반환의 문제는 예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변화할 때마다 깡통전세는 사회문제화되었습니다. 부동산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대안이지 전세폐지를 주장하면서 전세와 임대인을 적폐로 모는 것은 전혀 해결의 방법이 아닙니다. 정부에서 임대인의 보증금반환 대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늦었지만 이런 공감대가 전세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균형적인 정책으로 나가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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